변호사

석동현 : 윤석열 대통령 측 변호사, 그에 대해 알아보자.

celebrity_blog 2024. 12. 19.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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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동현은 1965년 부산에서 태어난 법조인으로, 대한민국의 법과 정치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그의 학력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석사 과정까지 마친 뛰어난 학문적 배경을 자랑한다. 부산성남국민학교, 대연중학교, 부산동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석동현은 서울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며 자신만의 길을 걸어갔다. 그는 제25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제15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하면서 본격적으로 법조계에 발을 들였다. 그의 경력은 주로 검찰과 법무부에서의 다양한 직책을 거치며 대한민국의 법과 질서를 지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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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동현의 법조인으로서의 경력은 매우 방대하고도 중요한 자리들로 채워져 있다. 그는 청주지방검찰청 영동지청장, 대검찰청 공보담당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1부장,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장 등을 역임하며 법조계에서 이름을 떨쳤다. 또한, 대검찰청 전략과제연구관과 대전고등검찰청 차장검사,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등을 거쳐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과 서울동부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도 재직했다. 그의 이러한 직책들은 모두 그가 대한민국의 법치와 정의를 수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석동현은 법무부에서 법무과장으로도 활동했으며, 그 후에는 부산광역시청 고문변호사로서 지역 사회의 법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여를 했다.

석동현은 정치적인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그는 자유한국당 해운대갑 당협위원장으로서 정치적 입지를 다졌고, 이후 윤석열 대통령의 국민캠프 특보단장으로 활동하면서 정치적인 영향력을 넓혔다. 또한, 제26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으로도 임명되어 윤석열 정부의 정책을 지원하며 국가의 중요한 업무에 참여하고 있다. 석동현은 정치적 입장이 무소속이지만, 국가와 국민을 위한 공적 역할에 헌신하며, 그가 맡은 모든 직책에서 높은 성과를 이루어내고 있다. 그의 경력은 단순히 법률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고, 정치 및 사회 전반에 걸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석동현은 대한민국의 법조인이자 정치인으로, 법학 및 국적법 분야에서 깊은 전문성을 가지고 여러 공직과 정치 활동을 이어온 인물입니다. 1960년 경상남도 부산시(현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에서 태어난 석동현은 부산성남초등학교, 부산대연중학교, 부산동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하여 법학을 전공했습니다. 그 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 석사 과정을 마쳤으며, 그의 법학적 배경은 이후의 검사 및 변호사로서의 경력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983년 제25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석동현은 이후 사법연수원 15기로 수료 후 검사로서 경력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청주지방검찰청 영동지청장을 비롯하여 대검찰청 공보담당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1부장,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등 중요한 검찰직을 역임하며 법조계에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습니다. 그러나 2012년에는 부하 검사의 성추문 사건으로 큰 논란에 휘말리게 되며, 당시 검사장으로서의 책임을 지고 사직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그를 일시적으로 법조계에서 멀어지게 했지만, 그 후에도 그는 법조인으로서 계속해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검사직을 마친 후 석동현은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2011년에는 한미 양국 간 무인자동출입국심사대 상호 이용에 관한 합의를 이끌어내어 대한민국이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미국과 무인 입국심사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또한, 2011년 8월 일본 극우파 의원들이 독도 문제를 거론하며 입국을 시도했을 때, 석 본부장은 그들의 입국을 거부하고 일본으로 돌려보내며 대한민국의 독도 영유권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법무부에서의 공적은 대외적으로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2013년 5월 15일, 석동현은 1억원 이상을 기부한 고액 기부자들의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하며 사회적 책임과 기부 활동에도 참여했습니다. 그 후, 공직을 퇴임한 석동현은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의 공동대표로 활동하며 북한 주민 인권 증진과 민주평화통일운동에 기여했습니다. 2020년에는 북한인권법의 핵심기구인 북한인권재단 출범과 북한인권대사 임명 문제에 대해 비판하며 한변의 국회 앞 1인 시위에 참여한 바 있습니다. 이와 같은 활동을 통해 석동현은 인권과 평화통일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석동현은 변호사로서도 활발히 활동해왔습니다. 2018년에는 민간인 사찰 지시 혐의로 수사를 받던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관을 변호하며 구속영장 기각을 이끌어냈고, 2020년에는 김경재 전 자유총연맹 총재와 김수열 일파만파 대표가 집회 관련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된 사건에서 변호인으로 나섰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수열의 보석을 허가받고 결국 벌금형으로 사건을 마무리 짓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2020년에는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의 댓글공작 지시 혐의 사건에서 무료 변론을 자원하며 법조인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석동현의 정치 활동은 2013년 새누리당 입당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갑 지역구 당협위원장 공모에 참여했지만, 당시 배덕광 전 해운대구청장에게 밀려 당협위원장직을 맡지 못했습니다. 2016년에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 부산광역시 사하구 을 선거구 공천을 신청했으나,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고 새누리당으로 당적을 변경한 조경태 의원에게 밀려 공천을 받지 못했습니다. 2017년에는 새누리당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갑 당협위원장으로 임명되었지만, 당내 갈등으로 사임하였고,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보수 대통합이 이루어지며 하태경 의원에게 밀려 출마를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석동현은 정치적 활동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쌓았으며, 그가 참여한 선거에서 비록 당선되지 않았지만, 지속적으로 정치적인 입지를 넓혀갔습니다. 2020년에는 공수처장 후보로 추천되기도 했고, 2022년 8월 18일에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에 내정되었고, 10월 11일에는 수석부의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의 정치 활동은 계속해서 주목을 받았으며, 2023년 12월에는 법치와 정의 실현, 이주민과 재외동포 권리와 인권 보호에 힘쓴 공로로 2023 김상철자유정의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석동현은 그의 공직 생활과 법조인으로서의 경력 외에도 정치인으로서의 활동에도 지속적으로 참여하며,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자유통일당 소속으로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하며 다시 한번 정치 활동을 펼칠 예정입니다. 그의 정치적 입지는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석동현의 가족 또한 중요한 인물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아내인 박영아는 물리학자로 현재 명지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박영아 교수는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79학번으로, 석동현과는 대학 시절 캠퍼스 커플로 만나 결혼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박영아는 한나라당에 입당해 제18대 국회의원을 지낸 경험이 있으며, 석동현과는 정치적인 면에서도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석동현은 또한 윤석열 대통령과 40년 지기인 사이로, 서울대학교 법대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입니다. 그들은 대학 시절부터 친분을 쌓아왔으며, 사법시험 준비 시절에는 여러 번 함께 시간을 보내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석동현은 그의 경력과 공적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 인물로, 특히 법학, 인권, 통일 문제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법조인 및 정치인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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