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동현 변호사 : 26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 그에 대해 알아보자.
석동현은 1960년 7월 10일, 경상남도 부산시 동구 범일동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변호사이자 공직자로, 제26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을 역임하였다. 그는 충주 석씨 가문 출신으로, 부산동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법학 석사 과정을 마친 후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석동현은 법조인으로서의 경력을 쌓으며 청주지방검찰청 영동지청장, 대검찰청 공보담당관, 법무부 법무과장 등을 거쳤다.
법조인으로서의 길을 이어가며, 석동현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1부장,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장, 대검찰청 전략과제연구관 등 중요한 직책을 맡았다. 또한,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서울동부지방검찰청 검사장 등을 역임하며 법조계에서 탄탄한 입지를 다졌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과 부산광역시청 고문변호사 등 다양한 공공 분야에서도 활발히 활동하였다.
석동현은 정치적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자유한국당 해운대갑 당협위원장과 윤석열 국민캠프 특보단장 등을 역임한 후, 제26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직을 맡으며, 윤석열 정부의 정책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의 공직 경력과 법조인으로서의 전문성은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석동현(1960년생)은 대한민국의 법조인 겸 정치인으로, 법학을 전공한 후 검사로 시작하여 정치계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친 인물이다. 그는 1960년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성남초등학교, 부산대연중학교, 부산동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하며 학문에 대한 깊은 열정을 보였다.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법학 석사 과정을 마친 후 1983년 제25회 사법시험에 합격하며 법조인으로서의 길을 시작했다. 사법연수원 15기로 수료한 뒤 검사로서 경력을 쌓았고, 이후 검사장까지 승진하며 그의 커리어는 더욱 두각을 나타냈다.
석동현의 검사로서의 경력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는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서울동부지방검찰청 검사장 등 여러 중요한 직책을 맡으며 법적 권한을 행사했다. 그러나 2012년, 그의 부하 검사 한 명이 성관계와 관련된 중대한 사건을 일으키자, 석동현은 상급자로서의 책임을 지고 사직하게 되었다. 이 사건은 이후 서울북부지검 고형곤 검사가 이 사건 기록을 무단 열람해 2차 가해를 일으키는 사태로 이어지면서 석동현의 이름이 또 한 번 소환되었고, 그로 인해 그는 법무부 검사 징계처분을 받게 되었다. 이 사건은 그의 검사 생활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동현은 정치 분야에서도 주목받았다. 2011년,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으로 임명된 그는 여러 중요한 정책을 실행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한미 양국 국민들이 서로의 무인자동출입국심사대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합의하여 대한민국이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최초로 미국과 상호 무인 입국심사 프로그램인 글로벌 엔트리(Global Entry)를 도입한 것이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 국민들은 미국 공항에서 대기시간을 줄일 수 있게 되었고, 미국 입국 절차가 보다 원활하게 개선되었다. 또한, 석동현은 일본 극우파 의원들이 독도를 일본 영토로 주장하며 대한민국을 방문하자, 그들의 입국을 거부하고 일본으로 돌려보내는 등 독도 영유권을 지키기 위한 강력한 입장을 표명했다.
2013년, 그는 1억원 이상을 기부한 고액 기부자들의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했다. 그 후, 공직에서 퇴임한 뒤에도 다양한 사회적 활동에 참여했다. 특히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의 공동대표로서 북한 주민들의 인권 증진을 위해 힘썼다. 2020년에는 북한인권법의 핵심 기구인 북한인권재단의 출범과 북한인권대사 임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또한 그는 민간인 사찰 지시 혐의로 수사를 받던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관을 변호하면서 구속영장을 기각시키는 성과를 이루었다.
석동현은 변호사로서 활동하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사회적 논란과 관련된 사건들에 개입했다. 예를 들어, 2018년에는 김태우 전 청와대 특감반원의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변호를 맡았으나, 변호의 순수성 문제로 변호인 직을 사임하기도 했다. 2019년에는 선거법·공수처법 패스트트랙 파동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보좌진들을 변호하며, 그들의 고발을 막는 데에도 힘썼다. 같은 해에는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에서 김기현 전 울산시장을 변호하며, 그의 법적 권리를 보호했다. 또한 2020년에는 광복절 서울 광화문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김경재 전 자유총연맹 총재와 김수열 일파만파 대표가 구속되자, 김수열을 변호하여 보석을 허가받고 결국 벌금형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2021년에는 천안함 유가족협회와 생존자 전우회가 천안함 좌초설을 주장한 신상철 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위원을 군사망사고진상규명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자, 고발대리인을 맡기도 했다. 2022년에는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으로부터 2천만원을 기부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또 같은 해에는 이재명 저격수 장영하 변호사가 의혹 제기 혐의로 체포되자, 그를 변호하여 구속영장 반려와 무혐의 처분을 이끌어냈다. 2024년 12월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무고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밝혀 또다시 큰 관심을 받았다.
석동현은 또한 정치 활동에도 매우 적극적이었다. 그는 2013년 새누리당에 입당하여 정치에 입문했고, 이후 여러 차례 선거에 출마를 시도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부산광역시 사하구 을 선거구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같은 지역구에 출마한 조경태 의원에게 밀려 탈락했다. 2017년에는 새누리당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갑 당협위원장으로 임명되었으나, 당무감사를 통한 당협위원장 교체를 반대하며 사임했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해운대구 갑 출마를 시도했으나, 하태경 의원의 재출마로 다시 한 번 출마에 실패했다. 그러나 2024년에는 송파구 갑에 출마를 선언하며 정치 활동을 재개했으나, 결국 자유통일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석동현은 여러 차례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2019년에는 '문재인 하야' 집회에 참석해 "나라와 국민에게 반역하는 행위만 아니라면 저는 친일파가 되겠다"는 발언을 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이는 당시 일본과의 갈등이 심화되던 상황에서 나온 발언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또 민주평통 사무처장으로 취임한 뒤, 전임 정부에서 임명된 민주평통 자문위원들에 대한 물갈이를 암시하는 발언을 하며 또 다른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새 대통령님의 국정철학에 충실하게 따를 수 있는 인사들로 민주평통을 재편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지만, 이는 자문위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교체를 시사하는 발언으로 해석되어 논란을 일으켰다.
그의 정치적 행보와 관련된 논란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민주평통에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 세력을 많이 등용하겠다는 발언도 비판을 받았다. 2023년 10월 11일 국정감사에서 이 발언에 대해 해명하며, 그는 윤사모 회원들을 전면적으로 자문위원으로 임명하겠다는 뜻은 아니라며, "참신하고 국가관이 뚜렷한 윤사모 회원들"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석동현의 정치 및 법조인으로서의 행보는 끊임없이 논란을 일으키면서도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며, 대한민국 사회에 영향력을 미쳤다. 그가 지닌 법적 지식과 정치적 신념은 여러 복잡한 사건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으며, 그의 다양한 활동은 대한민국의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