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선수

김택수 : 탁구선수 출신 진천국가대표선수촌장. 그에 대해 알아보자.

celebrity_blog 2025. 5. 1.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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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수(김택수)는 1970년 5월 25일 전라남도 광산군 본량면 양산리 양곡마을(현재 광주광역시 광산구 양산동)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전직 탁구 선수이자 탁구 감독이다. 본관은 광산 김씨이며, 학력으로는 광주서석초등학교, 광주무진중학교, 광주숭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원대학교 체육학과와 용인대학교 체육과학대학 사회체육학과에서 학사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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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수는 오른손 펜홀더 드라이브를 사용하는 탁구 선수로, 대우증권, 한국담배인삼공사(KT&G) 탁구단에서 활약하며 1988년부터 2004년까지 선수로서의 경력을 쌓았다. 이후 은퇴 후에는 탁구 감독으로 전향하여, 김택수 탁구클럽&아카데미 이사장직을 맡았으며, 2007년부터는 미래에셋증권 탁구단 감독을 역임하며 탁구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김택수는 또한 기업인으로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갔으며, 그의 가족으로는 배우자 김조순이 있다. 탁구에 대한 깊은 열정과 헌신으로 유명하며, 현재도 유튜브를 통해 탁구 관련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김택수: 대한민국 탁구의 전설적인 선수이자 감독

 

김택수는 탁구 선수로서뿐만 아니라, 감독으로서도 많은 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1970년 5월 25일 전라남도 광산군 본량면 양산리 양곡마을(현재 광주광역시 광산구 양산동)에서 태어난 그는, 탁구라는 종목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수로 자리매김한 뒤, 은퇴 후에도 탁구계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1987년 고등학생 시절, 김택수는 처음으로 국가대표로 발탁되었고, 이때부터 그의 탁구 인생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당시에는 선배 선수들의 그늘에 가려 있던 김택수는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며,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탁구의 에이스로 자리잡았다.

김택수의 선수 경력에서 가장 큰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의 성과였다. 올림픽 단식 금메달을 기대했던 그였지만, 탁구의 전설 얀 오베 발드네르에게 패배하면서 아쉽게도 동메달에 그쳤다. 그러나 이 성과는 그의 커리어에 있어서 중요한 이정표였고, 그의 실력은 단순히 국내를 넘어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게 된다. 특히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세계탁구 랭킹 10위권을 유지하며, 최상위권에서 꾸준한 성적을 거둔 그는 세계적인 탁구 선수들인 마원거, 왕타오, 류궈량, 쿵링후이, 발트너 등과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며 자신의 기량을 증명했다. 1998 방콕 아시안게임에서의 단식 결승전에서 류궈량과 벌인 32구의 랠리는 지금도 전설적인 순간으로 회자되고 있으며, 당시 김택수는 그의 전성기 시절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며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이 승리는 그가 탁구 역사에 남을만한 선수가 되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탁구계는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흐름을 맞이하게 되었다. 2000년대 들어 중국식 펜홀더의 이면타법이 점차 완성되고, 마린 같은 사기급 선수들이 등장하면서 김택수의 전성기도 점차 마무리되어 갔다. 결국 그는 2004년에 현역에서 은퇴를 선언했고, 그가 은퇴 후에도 탁구계에 미친 영향은 크다. 김택수는 은퇴 후 탁구 감독으로서 또 다른 전성기를 맞이한다. 특히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유승민 선수를 지도하여, 유승민이 왕하오를 꺾고 금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룬다. 이 당시 김택수는 유승민의 기술적인 부분을 철저히 분석하고, 최적의 전략을 구상하여 유승민의 금메달 획득을 이끌어낸다. 김택수는 실업팀 선수들을 대상으로 하는 세밀한 훈련을 통해 유승민의 기술적 완성도를 높였으며, 그 결과 유승민은 올림픽 금메달을 거머쥐게 된다.

김택수의 플레이 스타일과 기술적 업적

 

김택수는 탁구 선수로서 빠른 풋워크와 강력한 포핸드 드라이브, 스매시 등을 잘 구사하는 선수였다. 일본식 펜홀더 스타일을 바탕으로 한 그의 강점은 전형적인 펜홀더 선수의 약점인 백핸드를 훌륭하게 보완한 점이다. 그의 백핸드 드라이브는 매우 안정적이며, 빠른 쇼트로 상대의 공격을 처리하는 능력도 뛰어났다. 김택수의 안정감 있는 플레이는 유승민과 비교해도 한 수 위로 평가받을 정도였다. 유승민이 파워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였던 반면, 김택수는 기술적인 완성도와 안정감에서 탁월함을 보여주었다. 김택수의 탁구 기술은 중화권에서도 크게 인정받았으며, 그는 '천하제일펜홀더'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다.

김택수는 또한 탁구 코칭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이루었다. 그의 은퇴 후 커리어는 감독으로서 빛을 발했으며, 2007년부터는 미래에셋대우 탁구단의 감독으로 재직하면서 탁구의 발전을 이끌었다. 특히 그의 지도 아래에서 정영식 선수는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리우 올림픽에서 마룽을 맞아 초반 2세트를 선취하는 등의 인상적인 경기를 펼쳤다. 김택수는 그동안 꾸준히 후배들을 양성해왔으며, 유소년 선수반과 생활체육 동호인들까지 아우르는 탁구클럽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의 탁구 클럽은 경기도 수원시에 위치한 '김택수 탁구클럽'으로, 유소년 선수들의 훈련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을 위한 생활체육도 함께 운영되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은퇴 후에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는 김택수

 

김택수의 은퇴 후 활동은 탁구계에서의 중요한 역할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는 모습이다. 그는 대한탁구협회에서도 활동을 이어가며, 2022년에는 실무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택수는 또한 한국 탁구의 프로화 문제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으며, 탁구 시스템의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2022년 한국 프로탁구리그의 창설에 기여했으며, 탁구의 발전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김택수는 탁구 선수로서의 역량뿐만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탁구 용품 브랜드인 'KTS'를 론칭하기도 했다. 이 브랜드는 김택수의 이름을 딴 국산 탁구 용품 브랜드로, 점차 시장에서 인지도를 쌓아가고 있다.

김택수는 단순히 탁구 선수가 아닌, 대한민국 탁구의 역사와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기억된다. 그의 선수로서의 성취뿐만 아니라, 감독과 지도자로서의 역할이 탁구계에 미친 영향은 매우 크며, 앞으로도 많은 후배들이 그의 발자취를 따라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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