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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희의원

김경진 : 제20대 국회의원, 그에 대해 알아보자.

sdfdfs3f 2024. 12. 16.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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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의원은 1966년 7월 14일 전라남도 장성군 삼서면 보생리에서 태어났으며, 현재 국민의힘 소속의 제20대 국회의원입니다. 그는 광주백운국민학교와 광주무진중학교, 금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후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습니다. 김경진 의원은 제31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제21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 인천지방검찰청 검사로서 법조인으로서의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대검찰청 검찰제도 연구관,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광주지방검찰청 부장검사 등을 역임하며 법조계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정치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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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활동을 시작한 김경진 의원은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광주 북구 갑 지역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당선되었습니다. 이후 윤석열 국민캠프 대외협력특보와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상임공보특보단장 등을 역임하며 정치적 입지를 넓혔습니다. 현재는 국민의힘 동대문구 을 당협위원장과 국민의힘 약자와의동행위원회 사회안전분과 위원, 국민의힘 국민통합위원회 지역통합분과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국방부 정책자문위원으로도 활동 중입니다. 또한,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이사, 해시드오픈리서치 감사, 한국산업기술협회 정책총괄자문 등 다양한 직책을 맡아 폭넓은 사회적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김경진 의원은 천주교 신자로, 세례명은 그레고리오입니다. 그는 국방부 정책자문위원과 국민의힘 혁신위원, 인요한 혁신위원회 대변인 등을 맡으며 정치적 혁신과 변화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군 복무는 대한민국 육군 중위로 만기 전역하였으며, 현재도 다양한 사회단체에서 고문 및 자문 역할을 수행하며, 지역 사회와 국가 발전을 위해 꾸준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김경진: 대한민국의 검사 출신 정치인, 법조인의 복잡한 여정과 정치적 역정

 

김경진(1966년 7월 14일 ~ )은 대한민국의 검사 출신 정치인으로, 여러 차례의 선거에 출마하며, 국민의당, 민주당 등 다양한 정치적 배경을 거친 후, 국민의힘으로 입당하여 활동하는 복잡한 정치적 여정을 거친 인물이다. 그의 생애와 경력, 정치적 발자취를 한 번 살펴보면, 대한민국 정치사의 중요한 이정표들을 이해할 수 있다.

1.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김경진은 전라남도 장성군 삼서면 보생리에서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은 경제적 어려움과 가난 속에서 자랐다. 그러나 김경진은 어린 시절부터 학문에 대한 열정을 보였으며, 광주백운초등학교, 광주무진중학교, 금호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했다. 학문에 대한 강한 열정과 투철한 목표 의식을 가지고 학업에 매진한 그는, 결국 고려대학교 법학대학원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던 1989년, 제31회 사법시험에 합격하며 법조인의 길에 들어섰다.

2. 검사로서의 길

 

김경진의 법조인으로서의 첫 발걸음은 1992년, 사법연수원 제21기로 수료하며 시작되었다. 이후 군법무관을 마친 후,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검사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김경진은 인천지검을 비롯해 전주지검 군산지청, 광주지검 등지에서 근무하며 경력을 쌓았다. 그는 검찰 내에서 신뢰받는 검사로 자리 잡았으며, 특히 대검찰청 검찰연구관으로 활동하면서 법적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김경진은 변호사로서의 길도 모색하며 2000년 8월 변호사로 개업하였다. 그 후 다시 2001년 전주지검에 복귀하며 검찰로 돌아왔다. 검사의 길을 걷던 중, 그는 법조인으로서 사람들의 권리를 옹호하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데 큰 관심을 두었으며, 환경미화원 체불임금 사건, 소방공무원 체불임금 사건 등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소송에도 참여하였다. 그 역시 인권 변호사로서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했다.

3. 정치적 전환점: 2번의 낙선과 정치 활동의 시작

 

김경진의 정치적 경로는 다소 이른 시점부터 시작되었다. 2007년, 그는 검사직을 그만두고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의 대선 캠프에 법률특보로 합류하면서 정치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 시점에서 김경진은 정치에 대한 열망을 키워갔고,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창조한국당 후보로 광주 북구 갑에 출마했으나, 당내 갈등과 불리한 정세 속에서 탈당 후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그러나 그는 당시 현역 국회의원인 강기정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고 말았다.

이후 김경진은 민주통합당에 입당했으며,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같은 선거구인 광주 북구 갑에서 강기정 의원과의 치열한 당내 경선을 벌였으나, 공천에서 탈락하게 되었다. 다시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이번에도 현역 의원인 강기정 후보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그의 득표율은 29%로 상당히 높은 수치였고, 이는 김경진의 정치적 역량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4. 정치평론가로서의 활동

 

두 번의 낙선 후, 김경진은 방송 활동을 통해 정치평론가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그가 출연한 방송에서는 날카로운 비판과 실력을 인정받았으며, 특히 종편 방송에서 야당 패널로서 활약을 펼쳤다. 여당의 공격에 맞서 싸우며, 정치적 논리를 전개하는 모습은 많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정치 평론가로서의 그의 입지는 단순히 방송에 출연하는 것을 넘어, 다양한 정치적 이슈에 대해 깊이 있는 의견을 제시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5. 제20대 총선: 국민의당의 영웅

 

2016년 1월, 김경진은 국민의당에 입당하게 된다. 그가 입당한 후, 국민의당은 광주광역시 북구 갑 선거구에서의 경쟁력을 높였고, 김경진은 경선에서 김유정을 꺾고 공천을 받았다. 당시 김경진은 평소 쌓아왔던 인지도와 안정적인 지지기반을 바탕으로, 초반부터 무난한 당선이 예상되었다. 실제로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그는 광주 전남 지역에서 최다득표로 당선되었으며, 70.8%라는 압도적인 득표율을 기록하며 대승을 거두었다. 김경진의 승리는 단순한 개인적인 승리에 그치지 않았으며, 국민의당 전체에 대한 호남 지역의 신뢰와 지지도를 크게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6.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국정조사

 

김경진의 정치적 입지는 제20대 총선 이후 더욱 확고해졌다. 2016년 11월,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국회 긴급현안질의에서 김현웅 법무부 장관에게 강하게 질의하며 정치적 존재감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피의자 입건 여부를 묻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고, 이를 통해 당시 상황에 대한 강한 비판과 함께 검찰의 무능함을 질타했다.

김경진은 국정조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박근혜 정부의 부패와 국정농단 의혹에 대해 증인들에게 날카로운 질의를 펼쳤다. 특히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게 세월호 인양과 관련된 비망록을 추궁하며 강력한 비판을 쏟아냈다. 김경진은 “죽어서 천당 가기 쉽지 않겠다”는 강렬한 발언을 통해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책임을 강조하며, 국민들 앞에서 정의의 필요성을 강력히 피력했다. 그는 2016년 12월, 청문회 막바지에서도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최순실의 관계를 밝혀내기 위한 공세를 이어갔다.

7. 21대 총선과 정치적 변곡점

 

2019년, 김경진은 민주평화당을 탈당하고 변화와 희망의 대안정치연대에도 참여하지 않으며, 홀로서기를 선언했다. 21대 총선에서는 무소속으로 출마할 계획을 밝혔고, 여론조사에서 현역들에 비해 유리한 결과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인 조오섭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8. 국민의힘 입당과 윤석열 지지

2021년 7월, 김경진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선 캠프에 합류하게 된다. 이후 그는 윤석열을 지지하며 국민의힘에 입당하고, 대선 기간 동안 상임공보특보단장으로 활동하였다. 특히 윤석열의 대선 승리 후, 그는 다시 한 번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며, 차기 총선을 대비한 전략을 세우고 있다. 김경진은 그간의 정치적 이력을 바탕으로, 여당의 중요한 일원으로서 광주광역시장 출마 가능성도 점쳐지기도 했다.

9. 비판과 논란

 

김경진은 정치적 경로에서 여러 차례 논란에 휘말린 바 있다. 특히 광주에서 열린 토크 콘서트에서 "예쁜 여동생 같은 장관"이라고 표현한 발언으로 여성 비하 논란에 휘말린 적이 있었다. 또, 방송에서 종종 시사적인 발언을 하며 논란을 일으킨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카카오 카풀은 불법이다"라는 발언이나, "간의귀화법" 발의와 같은 법안들이 논란을 일으켰다.

김경진의 정치적 유산과 미래 김경진은 검사 출신이라는 강한 법조인적 배경을 지닌 동시에, 정치에 대한 뛰어난 이해와 분석 능력을 가진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정치적 색깔은 복잡하며, 여러 정치적 이념을 넘나들면서도 본인의 철학을 고수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정치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진행돼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신념이 그를 다채로운 정치적 여정으로 이끌었다.

 

김경진은 검찰과 정치를 넘나드는 복잡한 행보를 이어오며,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남을 것이다. 그의 향후 정치적 행보는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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