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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용혜인 : 기본소득당 제1·3·4대 대표, 그녀의 프로필에 대해 알아보자.

celebrity_blog 2025. 2. 6.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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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혜인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기본소득당의 대표이자 제21·22대 국회의원(비례대표)이다. 1990년 경기도 부천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부터 적극적인 사회운동에 참여하며 학생회장과 알바노조 대학팀장을 역임했고, 세월호 참사 당시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을 제안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이후 기본소득 정책을 중심으로 한 정치 활동을 이어가며 기본소득당 창당을 주도하고, 국회의원으로서 여러 입법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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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국회에서 기본소득 도입과 정치 개혁을 주요 의제로 삼으며 활동하고 있다. 제21대 국회에서는 기획재정위원회, 여성가족위원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제22대 국회에서도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의정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 내란 혐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기본소득당의 원내대표로서 당의 입장을 대변하며, 더불어민주당 기본사회위원회 자문단장을 맡아 정책적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2017년 박기홍과 결혼해 2021년 아들을 출산했다. 종교는 가톨릭이며, 세례명은 테오도라다. MBTI는 ISTP 유형으로 분석적이고 현실적인 성향을 보인다. 그녀의 정치적 행보는 진보적 가치와 개혁적인 정책 추진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용혜인: 대한민국의 사회운동가 출신 정치인

 

용혜인 의원은 대한민국의 사회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 기본소득당 소속의 제21·22대 국회의원이다. 그녀는 여러 사회적 이슈와 운동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정치적 입지를 다져왔다. 특히, 그녀는 세월호 참사 후 “가만히 있으라” 침묵 추모 행진을 제안하며, 사회적 관심을 모은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기본소득과 탄소세 등 정책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 실현을 위한 여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1.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용혜인 의원은 1990년 4월 12일, 경기도 부천시에서 태어났다. 이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에서 초중고 시절을 보냈다. 그녀의 학창 시절은 이후의 사회 운동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세월호 참사 후의 "가만히 있으라" 침묵 행진 제안의 계기가 되었다. 고잔동은 세월호 참사 당시 안산 단원고등학교가 위치한 지역으로, 용혜인 의원은 이 사건에 깊은 감정적 연관이 있었다.

 

경안고등학교 시절, 서울로 대학을 가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공부한 용혜인 의원은 경희대학교 사회과학부에 진학, 정치외교학과를 전공하게 된다. 대학 시절에는 정치외교학과 과대표와 주짓수 동아리 'FreeRoll'의 회장으로 활동하며 리더십을 발휘했다. 또한,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였고, 이는 이후 그녀가 아르바이트 노동조합을 조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아르바이트 경험은 그녀가 노동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게 만든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2. 정치에 대한 관심과 사회운동

 

용혜인 의원이 정치에 눈을 뜬 계기는 2011년, 대학교 3학년 때였던 한진중공업 희망버스를 통해서였다. 당시 크레인에서 고공 농성 중이었던 김진숙 씨를 만나면서, 그녀의 세계는 완전히 달라졌다. 김진숙 씨와의 만남은 용혜인에게 노동 문제에 대한 강한 관심을 심어주었고, 희망버스가 가지 않는 날에도 부산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떠나며 희망버스의 의의를 되새기곤 했다.

 

이 경험은 그녀가 사회적 문제와 인권, 노동의 권리 등을 정치적 의제로 삼게 되는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그녀는 이 시점부터 정치적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3. “가만히 있으라” 침묵 추모 행진 제안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후 용혜인 의원은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겠다고 결심한다. 당시 그는 대학생이었고, 학생회실에서 후배들과 대화 중 세월호 참사의 비극적인 소식을 접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후, 그는 '전원구조'라는 오보에 속아 희생자들의 실종 사실을 믿을 수 없었고, 그야말로 "설마 한 명도 구조되지 않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 오보가 전해지면서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용혜인 의원은 안산에서 초중고 시절을 보냈고, 단원고라는 단어에 특별한 감정적 유대가 있었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를 접한 후,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다”는 마음으로 세월호 추모 시위를 제안하게 된다. 그가 제안한 시위의 이름은 "가만히 있으라"였다. 이 문구는 세월호 사고 당시 선내에서 “현재 위치에 머물라”는 방송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당시 정부가 시민들에게 전한 메시지와 맞물려 정부와 국가의 태도에 대한 비판의 의미도 담겨 있었다.

 

2014년 4월 30일, 홍대에서 첫 침묵행진을 주최한 용혜인 의원은 "가만히 있으라"라는 피켓과 국화꽃을 들고, 침묵으로 추모 행진을 이어갔다. 첫 번째 행진은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하면서 시위의 규모가 커졌다. 용혜인 의원은 이후 매주 홍대에서 침묵행진을 계속 이어갔고, 시민들의 참여는 점차 확대되었다. 결국 이 추모 행사는 전국적인 움직임으로 확산되었으며, 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4. 정치 활동

 

용혜인 의원은 기본소득과 탄소세 같은 주요 사회적 이슈에 대해 강한 입장을 취하며, 그 실현을 위한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그녀의 정치적 활동은 단지 의정 활동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특히, 그녀는 기본소득당의 창당을 준비할 때부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기본소득 정책 분야에서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2022년 10월, 158명의 희생자를 낳은 10·29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용혜인 의원은 "정부가 국민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있는 태도는 세월호 참사와 똑같다"라며 강력히 비판했다. 그녀는 이태원 참사에 대해 정치적 태도와 정부의 무책임한 대응을 지적하며,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높여왔다.

5. 다른 정치인들과의 관계

 

용혜인 의원은 다양한 정치인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는 기본소득 정책을 공유하고 있으며, 상호 지원과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용혜인 의원을 기본사회위원회 자문단장으로 임명했으며, 이를 통해 기본소득 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협력 관계를 더욱 강화했다. 또한, 우상호 전 의원은 용혜인 의원을 "진정성이 있는 정치인"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유시민 작가는 젊은 정치인 중 가장 좋아하는 인물로 용혜인 의원을 꼽기도 했다.

6. 논란과 여담

 

정치 활동을 이어가면서 용혜인 의원은 여러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그녀는 항상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며 정치적 입지를 굳히고 있다. 특히,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2023년에는 구독자가 급상승하여 29만 명을 돌파한 바 있다. 정치적 활동 외에도 개인적인 유머와 소통을 중요시 여기는 그녀는 많은 이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선사하고 있다.

7. 저서와 유튜브 활동

 

용혜인 의원은 "당 만드는 여자들"이라는 책을 공동 저술하며, 기본소득당 창당 과정과 그간의 정치적 경험을 나누었다. 또한, 그녀는 유튜브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특히 쇼츠 영상에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정치인으로서의 이미지와는 별개로, 그녀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대중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있다.

용혜인 의원은 계속해서 정치적 여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나가고 있으며, 향후에도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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