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1966년 4월 24일 ~ 현재)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제16대 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과 제35대 대통령비서실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전라남도 장흥군에서 태어난 그는 한양대학교 공과대학에서 무기재료공학을 전공하고 학사 학위를 받았다. 학창 시절에는 학생운동에 활발히 참여하며, 한양대학교 총학생회장,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 등을 역임하며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이후 2000년에 새천년민주당 창당준비위원회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에 발을 들였고, 제16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며 정치인으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임종석은 열린우리당에서 원내대변인, 원내부대표 등 중요한 직책을 맡으며 국회 내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특히 제17대 국회에서는 통일외교통상위원회 간사와 개헌추진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활동하며, 국가의 중요한 정책들에 영향력을 미쳤다. 그 외에도 대통합민주신당 원내수석부대표, 민주통합당 사무총장 등으로도 활약하며, 정치적 경험을 쌓았다. 2014년에는 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으로 임명되어 박원순 시장의 시정에 기여하며, 시정의 중요한 정책을 조율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임종석은 제35대 대통령비서실장에 임명되며 대통령 비서실의 주요 직책을 수행했다. 그 기간 동안 그는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남북 관계를 위한 중요한 역할을 맡았으며, 외교 및 안보 분야에서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으로도 활동했다. 또한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이사장으로서 남북 경제 협력과 문화 교류를 증진하는 데 힘썼다. 임종석은 '림종석', '함박웃음', '플이중' 등의 별명으로 친근한 이미지를 가지며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임종석: 대한민국의 학생운동가 출신 정치인
임종석은 대한민국의 학생운동가 출신 정치인으로, 전대협 의장 출신의 거물 운동권 인사로서 정치적인 입지를 확고히 다진 인물입니다. 33세에 정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제16대, 제17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였으며, 주로 민주당계 정당에서 활동해왔습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서울특별시장 박원순의 정무부시장직에 임명되었고, 이후 19대 대선 당내 경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캠프에 합류하여 문재인 캠프에서 후보 비서실장으로 활동했습니다. 이 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그는 첫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임명되었으며, 이 시점에서 정치적 존재감을 확고히 하게 됩니다. 대통령비서실장에서 퇴임한 후에는 2019년 2월 18일, 문재인 정부의 1기 참모들과 함께 더불어민주당에 복당하면서 그의 정치적 여정을 이어갔습니다.
2. 생애
2.1. 유년기 ~ 학창 시절
임종석은 1966년 4월 24일 전라남도 장흥군 장흥읍 금산리 신기마을에서 아버지 임세기(任世基)와 어머니 경주 김씨 사이에서 4형제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유년 시절은 경기도 안양시에서 보내며 안양서초등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러나 5학년 때 서울로 이주하여 서울묵동초등학교, 태릉중학교, 서울 용문고등학교(33회)를 다녔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무기재료공학과에 입학했습니다. 학창 시절, 임종석은 학문보다는 학생 운동에 관심을 두었고, 그가 정치에 눈을 뜬 계기가 된 것은 한양대학교 노래패에 가입하면서부터였습니다. 1988년, 그는 한양대학교 총학생회장에 선출되었고, 그 후 전대협 3기 의장에 당선되며 학생 운동의 중심으로 떠오릅니다.
1989년,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수배되었고, 그로 인해 10개월간 도망다니며 여러 차례 기자회견과 대학 집회에서 모습을 드러내면서 '임길동'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1989년 12월, 임종석은 경희대학교에서 체포되었고,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며, 1993년 문민정부에서 특별사면을 받으며 3년 6개월 만에 석방되었습니다. 그의 출소 후 한양대학교에 복학하여 졸업을 했으며, 졸업식에서 공로상과 총동문회장상을 수여받았습니다.
2.2. 정치 입문 ~ 20대 총선
임종석의 정치적 길은 1994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비정부기구에서 활동하며, 청년정보문화센터 부소장직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1995년부터 정계 진출에 대한 기대를 받았고, 1999년 16대 총선에 출마하면서 정계에 발을 들여놓게 됩니다. 당시 그는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여 서울 성동구 지역구에 출마했고, 당시 한나라당의 4선 의원 이세기와 경쟁하여 당선되었습니다. 임종석은 1996년부터 본격적인 정계 활동을 시작했으나, 초선 의원 시절부터 큰 존재감을 발휘하지는 못했습니다. 2000년 7월, 그는 국가보안법 폐지와 관련된 국회 토론회에서 발언하며 이 문제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혔습니다. 2004년에는 열린우리당 대변인으로 활동하며, 당내에서 소수파로서의 역할을 맡았지만, 여전히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습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그는 낙선했지만, 이후 정치적 재기를 노리며 계속해서 당내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2011년 민주통합당의 사무총장에 임명되었고, 2014년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의 정무부시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 후, 박원순 시장 캠프에서 활동하며 정치적 입지를 다졌고, 2014년 지방선거에서 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으로 활동하며 박원순계의 대표주자로 분류되었습니다. 임종석은 2016년 20대 총선에서 정무부시장직을 내려놓고 은평구에 출마했으나, 당내 경선에서 강병원 후보에게 패배하며 다시 한 번 낙선하게 됩니다.
2.3. 문재인 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장
그의 정치적 전환점은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캠프에 합류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임종석은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비서실장으로 영입되었고, 그 동안의 정치적 경험과 운동권 출신의 배경을 바탕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후, 그는 문재인 정부의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대통령비서실장으로서 임종석은 청와대 내에서 중요한 결정들을 이끌어가며 대내외적으로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특히, 2018년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정상회담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북한과의 대화와 협상을 주도하며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한 중요한 발판을 마련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의 임기 중에도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그는 항상 자신을 둘러싼 부정적인 시각에 대응하며 대통령과 당정의 상호 작용을 이끌어갔습니다. 청와대 비서실장직에서 퇴임한 뒤, 임종석은 차기 대권 주자로서의 입지를 강화하며 정치적 입지를 확고히 하게 되었습니다.
2.4. 2019년 이후
2019년, 임종석은 정계 은퇴를 선언하며 민간에서 통일 운동을 해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21대 총선에서는 종로 출마설이 제기되었으나, 결국 불출마를 결심하고 정계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그는 2020년 6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관련 활동을 지속하면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역할을 이어갔습니다.
임종석은 그 동안의 정치 경력을 통해 대한민국 정치에서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자리잡았으며, 특히 문재인 정부의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으로서 대내외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정치적 영향력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으며, 차기 대권 주자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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