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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식 : CJ그룹 및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 그에 대해 알아보자.

celebrity_blog 2025. 6. 9.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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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식(孫京植, Sohn Kyung-shik)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기업인이자 재계 원로로, CJ그룹 회장이다. 1939년 9월 15일 경기도 경성부(현재의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난 그는 밀양 손씨 가문 출신으로, 서울청운국민학교에서 밀성국민학교로 전학해 졸업했고, 이후 경기중학교와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법학 학사 학위를 받은 후, 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취득했다. 경영 전문성을 인정받아 우송대학교에서는 명예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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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식은 CJ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CJ제일제당과 CJ의 대표이사 회장을 맡고 있으며, 국내 주요 재계단체인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직도 겸하고 있다. 그는 오랜 기간 동안 재계와 산업계의 중추적 인물로 활동하며, CJ그룹을 종합생활문화기업으로 성장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특히 글로벌 식품·물류·문화 산업으로의 확장을 주도하며 CJ를 세계적 기업 반열에 올리는 데 기여했다. CJ그룹이 엔터테인먼트, 바이오, 물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을 추구하게 된 데에는 그의 장기적인 경영 전략과 국제적 감각이 큰 영향을 미쳤다.

손경식

 

가족으로는 아내 김교숙 여사와의 사이에 1남 1녀가 있으며, 아버지 손영기와 누나 손복남 등 가족 역시 사회 각계에서 활동한 인물들이 많다. 장인인 김봉환은 과거 군 장성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손경식은 재계 활동뿐 아니라 학계, 공공 부문과의 교류에도 활발하며, 국내 경제 발전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80대 중반의 고령에도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 중인 그는 한국 산업사에서 보기 드문 장수 리더로 평가받는다.

 

 

 

 

손경식(孫京植, Sohn Kyung-shik) – 대한민국 재계의 원로 기업인

 

손경식(한국어: 손경식; 한자: 孫京植; 1939년 9월 15일 출생)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기업인이며, 현재 CJ그룹 회장, CJ제일제당 대표이사 회장, CJ 대표이사 회장,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한국 산업 발전과 기업 경영사에 있어 손꼽히는 인물로, 재계뿐 아니라 경제계, 학계, 정치권 전반에 걸쳐 영향력 있는 원로로 인정받는다.

1. 생애 및 학창 시절

 

손경식은 1939년 9월 15일, 일제강점기 말기 경성부(현재의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5세 때 해방을 맞이하고, 11세였던 1950년 한국전쟁 발발 당시 청운국민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1.4 후퇴 이후 부친 손영기의 고향인 경상남도 밀양으로 피란을 떠났으며, 밀성초등학교에서 초등 과정을 마쳤다. 이후 전쟁 중 부산 서대신동에 임시 교사로 설치된 경기중학교 피난 분교에 입학했으며, 휴전 이후 서울로 복귀했다. 전쟁 후 경기중학교와 경기고등학교에서 수학했지만, 당시 미군이 학교 교사를 점령하고 있어 대부분의 수업을 천막으로 만든 가건물에서 진행해야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무렵, 우연히 검정고시를 보러 가는 친구들을 따라 시험을 응시했고, 예기치 않게 합격하여 경기고등학교에 자퇴서를 제출했다. 불과 3개월 뒤인 1957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에 합격하며 국내 최고의 명문대학 진학에 성공했다. 대부분의 법대생들이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그는 기업인의 길을 꿈꾸었고, 경영 현장에 나가고자 했다.

 

서울대 졸업 후 1961년에는 한일은행에 입사하였고, 이후 미국으로 유학하여 켄터키 웨슬리안 대학에서 수학했다. 이어 오클라호마 주립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MBA)학위를 취득했으며, 이후 우송대학교, 세종대학교에서 명예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유학 경험은 이후 글로벌 경영과 전략, 해외 진출에 큰 밑거름이 되었다.

2. 기업 경영 활동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손경식은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권유로 삼성에 입사했다. 회장 비서실에서 근무하며 삼성의 핵심 계열사 중 하나인 삼성전자공업(현 삼성전자)설립에도 참여했고, 이후 삼성 계열사인 안국화재(현 삼성화재)의 대표이사 부회장을 맡아 경영에 참여했다.

1993년, 삼성그룹이 제일제당(현 CJ)을 포함한 일부 계열사를 분리하면서 CJ그룹의 독립 경영 체제가 출범했고, 이듬해인 1994년 CJ주식회사 대표이사 회장, 1995년 CJ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그는 CJ그룹을 식품회사에서 출발해 문화콘텐츠, 물류, 바이오, 뷰티 등 다양한 산업 분야로 확장시키며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기업’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의 리더십 아래 CJ는 엔터테인먼트 계열사인 CJ ENM, 물류 전문 CJ대한통운, 바이오 사업 CJ바이오 등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했고, 아시아뿐 아니라 북미, 유럽 등지에서도 브랜드 영향력을 확장시켰다. 손 회장은 경영의 디테일뿐 아니라 외부와의 네트워크 확장에도 뛰어나, 대한상공회의소 회장(20052013),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20182024, 3회 연임) 등 국내 주요 경제단체를 이끌며 재계의 ‘얼굴’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3. 가족과 사회적 영향력

 

손경식은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1968년, 경북 선산 출신으로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김봉환의 딸 김교숙 여사와 결혼하였다.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으며, 딸은 손희영, 아들은 손주홍이다. 그의 누나인 손복남 여사는 CJ그룹 창업주 이맹희 명예회장의 배우자로, 손경식은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이미경 부회장의 외삼촌이기도 하다.

 

특히 CJ그룹의 경영권이 이재현 회장에게 넘어간 후, 손경식은 누나 손복남의 요청으로 그룹 경영을 보좌하고 조카의 후견인 역할을 수행하며, CJ의 안정을 도모했다. 1994년 삼성에서 CJ가 분리되는 과정에서 이건희 회장과의 경영권 갈등도 있었다. 이 회장이 제일제당 사장단 인사를 단행하며 손경식의 의자를 치우자, 조카 이재현은 이를 경영권 침해로 받아들여 CJ의 독립성을 본격화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손 회장은 김우중 대우 회장의 고등학교 2년 후배로, 고인과의 인연을 회고하며 “완장을 차고 기율부장 역할을 하던 엄격한 선배였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조석래 효성 회장의 4년 후배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조 회장과 미국, 일본 등 해외 출장 시 동행했던 추억을 자주 언급한다. 삼성 이건희 회장과도 회장 비서실 시절부터 잘 아는 사이로, 그를 “생각이 깊고 전략적 판단이 뛰어난 인물”로 평가했다.

4. 공로와 수상, 성격

 

손경식 회장은 산업 발전과 기업 경영 공로로 금탑산업훈장,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훈했다. 한국뿐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도 그의 활동이 인정되어, 우즈베키스탄 도스트릭 훈장(2011), 일본 욱일대수장(2017), 코리아소사이어티 밴플리트상(2018)등을 수상했다. 또한 한미우호협회 이사장으로도 재임하며 한미관계의 민간 외교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는 정·재계에서 ‘마당발’로 잘 알려져 있다. 겸손하고 섬세한 성격, 약속을 철저히 지키는 자세, 자기보다 남을 배려하는 철학으로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는 인물이다. 한국 사회의 기업가정신이 위축되고 청년들이 안정적인 진로만을 추구하는 현실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며 “이병철, 정주영이 의대를 갔다면 오늘의 경제강국은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5. 현재

 

2020년대를 맞이한 손경식은 80대 중반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CJ그룹과 경총을 이끌며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그는 단순한 기업 경영을 넘어 한국 사회 전체에 걸쳐 기업가 정신, 글로벌 경쟁력, 민간 외교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존재로 평가된다. 손경식은 단지 한 기업의 총수가 아닌, 시대의 흐름을 읽고 한국 경제의 방향을 제시하는 ‘살아 있는 역사’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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